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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23살의 기억일상다반사 2014. 3. 24. 18:24
나의 기억이 시작되는 곳..
부모님이 나를 낳으시고도 두번의 이사 후,
세번째로 자리 잡았다고 하시는 이 곳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번째
우리집이다...
지금은 4층짜리 빌라가 자리 잡고 있지만,
20여년 전 이곳엔
2층이라곤 두어평 남짓한 다락방 하나가 전부였던
기와지붕의 1층 집이었다.
좁은 골목의 막다른 길 끝
오른쪽 청록대문의 1층 기와집..
그땐,
거실이 아니라 마루가 있어 한여름에도 누워있으면 시원했었고,
앞마당이 있어서 스카이 콩콩과, 빨간 호피를 타고 놀수 있었으며,
상추와 고추를 심으시던 어머니 모습이 기억난다.
뒷마당도 있었고, 화장실은 집밖에 있었으며
가을즈음엔
주말 아침에는 저멀리 골목시작에서부터 검은색 연탄을 나르던 기억이 떠올랐다.
*EP1: 내가 city100이 무서운 이유
어느날 밤, 형과 함께 이골목 초입에 있는 슈퍼마켓에 심부름을 같이 왔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복수심에) 형을 때리고 미친듯이 집으로 뛰고 있었다.
그리고 10초 뒤에 정신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랫목에 누워 있었다.
먼저 치고 도망치던 나는 앞에 주차되어 있던 city100을 보지 못하고,
뒤따라 오는 형을 쳐다보며 혓바닥만 내일고 있다가
전속력으로 오토바이로 돌진,
당시 초1이었던 나는 복부로 배달용 뒷좌석bar에 드리댔고,
형말로는 물밖에 내팽개쳐진 생선마냥
껄덕이다가 기절했다는..
뭐 이딴 에피소드 다있지 않나?ㅎ
우리집과 앞집 승원이네 집, 그리고 골목길 끝을 둘러싼 한평남짓한 공간은
우리 골목crew들의 놀이터였다.
평평한 바닥탓에 팽이가 오래도록 잘 돌았고,
말뚝박기, 제기차기, 땅따먹기...
그닥 많이 한게 없었던거 같은데..
그 땐, 그냥 그렇게 노는게 잼있었다.
이사를 나올쯔음 지어졌던 벽넘어 있던 공장형 빌라는 아직도 있었지만,
우리들의 놀이터는 더이상 애들이 놀지 않는듯.
얼핏보면 지하에 있는듯해 보이는,
맨날 형을 잡으러 다녔던 그 오락실은
자취를 감췄더라.
지금은 추어탕집이 자리잡고 있는...
우리집으로 가는 골목길 입구에 있던
그 땐 세상의 모든걸 다 가지고 있었던것 같은
그 구멍가게도 없어졌고,
그앞엔 잉어빵을 팔고 있더라.
골목에서 나와 왼쪽으로 돌아나가는 길은
내가 저녁 해가 질때까지 놀았다던 놀이터로 가는길..
가는 길엔 없던 청소년 문화정보 센터가 생겼네.
그래 맞아.
그 놀이터는 마치 버뮤다 삼각지 처럼
삼각형 모양의 놀이터였지.
아직 남아 있었다.
신기했다.
아직 남아 있었어서.
'근데 내가 여기서 뭐하고 놀았지? 해질때까지?'
그냥 땅파고 놀았던거 같은데..
지금은 고운 모레는 없이
우레탄 바닥으로
나의 감성과 함께 딱딱히 굳어져 있었다.
으이그,
헤벌레의 서방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ㅋ
그 시절,
나의 귀가시간은
동네방네 종소리가 울릴 때였다.
내 기억이 잘못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시절엔 저녁 6시가 되면
우리동네에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퍼졌었다.
어머니께선
어디에 있던지 그소리를 들으면
바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었지.
종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붉은 노을이 물든 하늘과
산이 예쁜 길이었는데...
지금은
푸르지오와 편한세상이
뒤덮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푸르고 편하길래
이름을 고딴식으로들 지은 건지...
어쨌든,
그땐, '놀이터는 멀다' 란 느낌의 귀가길이,
지금은, 아이스 커피 두,세모금 삼키니까 도착하더라.
유치원도 가기 전 부터
나는 집밖을 돌아다니는걸 좋아했었다고 하셨다. (난 기억안나지만)
어머니도 대단하신게,
5,6살 꼬맹이가 집밖에 나가서
몇시간 소식이 없어도
걱정없으셨단다.
왜냐면,
난 늘 오락실 맞은편 경찰서 앞에서
질질 짜고 있었댄다.
신기한건
어딜 그렇게 돌아 다니다 왔는지
신발은 다 헤져 있었다고,
그 경찰서에선
이제 오토바이를 파네.
그 오락실은
우리 형제에겐 랜드마크와도 같은 곳이었다.
돈이 다 떨어졌는데 아직 종소리가 날려면 멀었다고 생각되면
뒤돌아서 놀이터로 갔었고,
학교가는길은 오른편,
정면엔 내가 있던 경찰서,
돈이 남았는데 지루하면 왼쪽으로 올라가
2배정도 큰 다른 오락실로...
EP #2:
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어머니께선 내게 돈과 저축의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매주(매일?) 천원씩 내게 쥐어주시며
직접 은행 창구에 가서 저금을 하게 하셨다.
내 기억으로 그때 '주택은행'이라는 은행이 우리동네에 새로 생겼었고,
(지금은 국민은행에 합병되어있다.)
나는 매일 그 은행 창구 누나와 내 통장을 주고 받았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하나하나 모아가는 재미를 즐긴다.
그 건물이 지금은 요양병원으로 변신되어 있네.
나의 나와바리였던 골목은
이제 새도로명 주소를 얻어서
'삼양로 46길' 로.
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국민학교)는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초등학교 앞에 신호등이 없어서,
매일 육교를 건너야했던!
(내 허벅지 사이즈를 길러준..)당시 큰건물 4개, 커다른 운동장과 서브 운동장까지 겸비했던,
초대형 학교였다.
지금은 육교가 허물어져 있고,
신호등이 있고,
전철공사가 한창..
초입에 자리잡았던
문방구 양대산맥이 있던 자리는
간판집과 오토바이 판매점으로...
어라?
이렇게 짧았었나?
당시 초1에겐
3단 언덕을 올라야 정문,
정문에서부터 운동장까지도 죽을 맛이었는데,
지금보니 고작 몇걸음..
오오오
초입을 지나야 있었던
'국제 문방구'는 아직도 살아있었음!
퇴근길(?)에 자주 이용했었던
불량식품들...
아직도..ㅋㅋㅋㅋ
'샤니... 살아있었네!'
이 학교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좋았다.
폭설이 내린 다음날.. 특히 주말엔
형과 함게 포대자루를 하나씩 챙겨서
학교로 왔었다.
학교 운동장부터
국제 문방구까지는
드림랜드 눈썰매장보다 긴 슬로프가 됐었다.
We loved it!
학교는 리모델링이 많이 되었다.
우리학교의 최대 장점은,
학교에서 동물을 키웠었다는 점...
토끼, 다람쥐, 거위..등등등...
6학년 교실이 있던 제일 뒤, 가장 높은 곳에 있었던 건물 바로뒤에
사육장이 있었다.
저학년때
수업이 일찍끝나면
사육장ㅇㅔ서 동물 구경하다가
형이랑 같이 집에 왔던 적도 있었던것 같다...
지금은 흔적만 살짝 남아있는듯...
입학식 전날에 연탄가스 마셔서
엄마 등에 엎혀서 했던 첫등교 (난 정신을 못차렸던것 같은데, 입학식엔 참석을 했다.)
연필보다
피아노, 흙과 모래
의자에 앉아있기보단
밖으로 나가 늘 뛰놀던
하루 용돈이 없어도
아무 걱정없이
하고 싶은거 하고
늘 누굴 만나도
웃으며 맞이 하던
내가 살던 이곳에서의 기억들이 스틸 사진처럼 멈춰버리고
이사를 나온지도
벌써 23년이 지났다.
기억은 그대로 인데,
나는 참 많이도 변해있다.
앞으로 23년이 또 지나게 되면
난 환갑을 바라보고 있겠네.
지난 시간들보단
더 잘,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되길...